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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실화바탕,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by 호스토리79 2023. 1. 17.

출저: 네이버 '살인의추억' 포스터

'살인의 추억' 인트로

다들 살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가지고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한 사건에 대한 추억이야기이다.
2003년에 개봉하여 올해 딱 20년째가 된 영화이지만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명작이라는 것에 대부분은 공감할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부터 살펴보자면, 1980년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경기도 일대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연이어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자 국민들의 관심이 주목되었고 이에 특수수사본부가 설치되고 구희봉 반장(배우 변희봉)을 필두로 육감과 폭력으로 수사하는 구시대를 상징하는 박두만(배우 송강호)과 서울에서 이 사건해결을 위해 파견 와 증거와 서류위주로 움직이는 신세대를 상징하는 서태윤(배우 김상경)이 함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계속해 수사에 난항을 겪자 경찰들은 백광호(배우 박노식)라는 죄 없는 사람을 고문하고 자백시켜 범인으로 만드려 하지만 현장검증에 실패하며 구희봉반장은 파면되게 된다. 그 후 사건해결에 의지를 가진 새로운 반장을 필두로 다시 한번 수사를 진행하게 되고 결정적 증거를 잡은 서태윤이 주도하여 유력한 용의자를 찾게 되는데.. 과연 사건을 해결이 될 것인가...

 

이 영화에서는 시대상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장면들이 아주 잘 나온다. 사건현장에 경운기가 지나가며 족적을 다 뭉개고 가는 장면이나 경찰관들이 일일이 큰 종이에 수기로 쓴 사건일지를 브리핑하는 장면, 사람을 일단 잡아와 강압적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장면, 시위를 하는 학생들을 폭행으로 진압하는 장면 등 사건외적으로도 이런 디테일들이 영화의 몰입감을 높여주는 듯하다.

 

잊힐뻔한 추억

영화의 모티브가 된 일명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영화가 개봉될 당시만 해도 거의 사람들에게 잊혀 가고 있었던 일이다.

심지어는 진범이 잡히지도 않은 미제사건이었기에 그 무관심도는 더 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는 범인을 잡기 위해 형사들이 최선을 다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를 들어 범죄현장에 음모가 없는것을 착안하여 목욕탕에가서 그것이 없는 사람을 찾아본다든지, 모든 사건이 비오는날 일어난 것을 착안하여 여자경찰관이 빨간옷을 입고 일부러 비오는 날 혼자 걸어본다든지, 미치도록 잡고 싶었지만 수사에 진척이 없자 무당에게 찾아가는 장면도 있으니 당시 범인을 잡기위해 얼마나 다양한 노력을 하였는지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사건 발생지는 1980년도의 개발되지 않은 경기도 지역이었고, 당시 발달되지 않았던 과학과 수사기법 그리고 CCTV조차도 없던 열악한 치안환경에 진범은 검거되지 않았는데, 2019년도에 부산교도소에 처제를 살인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던 이춘재가 당시 채취한 범인의 dna와 일치한 것이 확인되어 이 사건의 진범이 다소 허무하게 밝혀지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잊지 말아야 할 추억

영화 속 강압적으로 자백을 강요받았던 인물 백광호 같은 사람이 그 시대에 실제로 존재하였다.

당시 8차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경찰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자백을 강요받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서 20년 6개월을 복역한 사람이 있다. 윤성여 씨는 1989년도 이 사건의 범인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복역 중 감형받아 22살에서 42살까지 교도소에서 억울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2009년에 형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왔을 때도 너무나도 변해버린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하며 심지어 전자발찌를 차고 있어야 했기에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해알고 지냈던 교도관에게 연락을 했다고도 한다. 출소 후에도 재심을 3번이나 청구했다고 하니 그가 느꼈을 억울함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2019년 이춘재가 자신이 모든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자백했을 당시 어땠냐는 물음에 "내 무죄를 입증해 준 그의 자백이 너무 고마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직장을 다니며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사받던 사람들 중 4명이나 사망을 하고 윤성여 씨를 검거한 공으로 승진한 경찰관이 5명이라고 하니 당시 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투명하지 못하였는지 느껴지며 씁쓸한 기분이 든다. 경찰과 국과수의 조작으로 억울하게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빼앗긴 윤성여 씨에게 위로를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